AI가 없앤 건 신입의 자리가 아니라, 성장 사다리다
지난주 딜로이트가 내놓은 "Broken Skills Ladder"(부러진 성장 사다리) 리포트는 익숙한 질문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시 던진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는가"가 아니라, "AI가 없애는 자리는 정확히 어떤 자리인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예상보다 더 구체적이다.
사라진 것은 자리가 아니라, 자리 안의 실수다
딜로이트가 약 1만9000개 업무 태스크를 분석한 결과, AI는 주로 저·중숙련 역량 형성 업무를 대체하고 있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저숙련 업무"라는 표현이 아니다. 그 업무들이 원래 무엇을 위한 자리였는가다. 신입이나 초급 실무자가 반복해서 실수하고, 고쳐지고, 다시 시도하면서 판단력을 쌓던 자리다. 딜로이트는 이 자리를 "역량이 형성되는 업무"라고 불렀다.
맨체스터대학교 켈레치 에쿠마 교수의 최근 연구도 비슷한 지점을 짚는다. AI 시대의 고용가능성은 기술적 숙련도보다 비판적 사고와 복잡한 상황에 대한 판단력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력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반복해서 틀려보고, 왜 틀렸는지 확인하는 자리에서 만들어진다. 그 자리가 지금 조용히 줄고 있다.
그래서 직원 72%, 경영진 73%가 같은 말을 한다. "실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더 필요하다." 흥미로운 건 이 응답이 AI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AI를 가장 많이 쓰는 조직 안에서 나온 목소리다.
조직의 사다리가 끊기는 동안,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이 침식은 조직 설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직이 사다리를 다시 세워주기를 기다리는 동안, 개인이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대응도 있다. 『조용한 침식』에서는 이것을 "과정 기록법"이라고 부른다.
과정 기록법 — 첫걸음
AI는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결과물을 받아들이기 전, 무엇을 왜 수정했는지는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데도 남지 않는다.
오늘 할 수 있는 첫걸음은 하나다. AI가 만든 결과물에서 오늘 내가 무엇을 고쳤는지, 그 이유를 한 줄만 적어본다. "이 부분을 이렇게 바꿨다. 이유는 X." 이것만으로 시작된다.
이 한 줄이 쌓이면 조직이 없애버린 "반복해서 틀려보는 자리"를 개인의 기록 안에서 다시 만들 수 있다. 결과물만 쌓는 사람과 과정을 기록하는 사람은 1년 뒤 완전히 다른 자리에 서 있다. 구체적인 루틴 — 무엇을 언제, 어떻게 기록해야 패턴이 보이는지 — 은 책에서 더 다룬다.
당신의 조직에서, 이 사다리는 얼마나 끊겼나
『조용한 침식』은 이 현상을 Expertise Debt(숙련도 부채)라는 개념으로 먼저 짚었다. 지금 이 침식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30초 만에 확인할 수 있다.
30초 침식지수 자가진단 → 『조용한 침식』 자세히 보기채용 공고가 줄어드는 것은 뉴스가 된다. 그러나 그 공고 뒤에서 실수하며 배우던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다. 몇 년 뒤 격차로 드러날 때까지는.
사다리가 끊긴 것을 조직이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개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기록을 시작하는 데는 오늘 하루면 충분하다.